삼마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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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년 8월 28일 삼마요양원 주일예배

관리자  175.203.246.85 2022-08-28 11:33:37

찬 송 :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사 회 : 한경애

묵 도 : 37문 시편91

찬 송 :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 송 : 384 나의 갈 길 다가도록

기 도 : 한기창 원장님

성경봉독 : 요한복음 14:27

설 교 자 : 한경애 삼마요양원장 (전도사)

설교제목 :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찬 송 :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주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가르쳐주신 인사 말씀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평안 하십시오' 라는 인사말입니다. 인사말 이상으로 이 벅찬 심정을 묶어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인사말을 주셨다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교보다 서로 반가운 인사나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요새 인사말이 "얼마나 바쁘십니까?" 하고 말합니다. 이 인사말 "얼마나 바쁘십니까?"는 지금 국제적인 인사말이 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도 요새는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면 "How is busy of you?..." '얼마나 바쁘십니까?' 일본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이 인사말을 외국의 어느 신학자는 급변하는 시대의 인사말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침 잡수셨습니까?", "저녁 드셨습니까?", "진지 드셨습니까?" 하는 등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아침을 들면 저녁이 간 데 없던, 지지리도 가난했던 우리의 서민들의 너무도 서러운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겨우 그 인사말은 면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만나면 피차 나누는 인사말이 있는데 그 말은 히브리말로 Shalom입니다. 샬롬은 평화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르치신 인사말 "평안하십시오" 하는 말입니다. 전쟁과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추방과 멸시와 오욕의 나날을 지내는 불안의 연속을 거듭하는 이 인류의 방랑아, 유목민족에게 이 이상 더 절실한 인사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이 19세기 이후 다시 유대 땅에 회복하려고 시온(Zion)주의 운동을 일으킨 이후부터 그들은 다른 작별인사말을 썼습니다. 그것은 "다음 해에는 예루살렘에서 만납시다"라는 작별인사였습니다. 다음 해가 근 2천년 후에 거듭되면서도 그 작별인사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원하는 인류의 소원은 비단 유대민족 뿐이 아닙니다. 나는 이 동방 작은 땅 삼천리에 사는 우리 민족, 짧고 짧은 6-70의 한 평생 살고 가는 이 생애 동안 몇 차례의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때마다 절망과 처절한 죽음을 봐야 하는 처지와 굶주린 배를 안고 울어야 했고, 그도 부족해서 사람으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해보고, 글 한 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그나마 좁고 좁은 이 땅에서도 고향을 지척에 두고 가보지도 못하고, 부모형제 처자가 갈리어 오매불망 사모하다 눈을 못 감고 가야하는 이런 민족이, 이런 우리들이 하루라도 평화롭기를 바라는 절실함 이상 또 무슨 소원이 따로 있겠습니까?

1. 먹고 사는 일

사람에게는 가난이 주는 불안이 가장 첫째 되는 불안인가 싶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태어나면 그 생명은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장받아야만 합니다. 노동이 먹고사는 대가로 치부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큰 결함 중의 큰 결함입니다. 사람이 자기 능력과 기능에 따라 일하는 것은 인간 된 본분이요 사명이지, 그것이 꼭 먹는 것과 바꾸어져야 할 천한 일이 아닙니다.

요즘 인권 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우선 인권, 인권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인권은 생존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윤락 여성 문제 토론회의 사례 발표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한 윤락여성이 자기 생애를 직접 발표하는 시간에 첫 마디도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회자가 그의 쓴 글을 중심으로 대강 그의 행적을 말했는데, 그녀는 충남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 일곱 살까지 밥 한 그릇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파란만장한, 인생이랄 것 없는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우리는 그 시간 어린이처럼 함께 목놓아 울 정도였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범죄와 부조리와 불륜의 죄악들의 8-90프로는 이 생존권의 보장을 받지 못한데서 오는 것으로 봅니다. 우선 평안히 먹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하여야 하겠습니다.

 

2. 마음의 불안

그런데 신기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의식주가 풍족하고 권세 부귀가 드높은데도 거기에 더 큰 불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타임지에 미국의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Howard Hushes)의 신비스러운 인생이야기가 요약되어 보도되었습니다. 그 재산이 얼마인지 계수조차 하기 어려운 부자요, 심복 경호원이 일류 대학출신으로 여섯 명이나 됩니다. 한데 혼자 방에서 머리도 안 깎고 손톱 발톱도 한 치씩이나 기르고, 원시인의 생활처럼 벌거벗고 늙은 시절을 보내면서 미치광이처럼 때때로 '나는 고독하다', '나는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2, 3년 전, 미국민을 놀라게 한 허드스 양 사건,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의 신문왕으로 불리는 재벌이요 유명인사인데, 그 딸이 살인 깡패단에 끼어 은행 강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정 형편이 어떠하였겠습니까? 키신저 장관이 이제는 경호원도 필요 없게 홀가분하겠다 하니, 장관자리가 얼마나 괴로운 자리며 대통령자리는 감옥생활이나 다름없다고 투르먼 대통령이 술회한 것은 옳은 말입니다. 절세의 사상가요 학자인 니체는 미쳐서 죽었습니다.

 

사람이란 그 무엇이나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이 더 큰 것입니다. 채필근 목사가 조사로 일할 때, 선교사에게 가서 월급을 타 가지고 평양 시골서 90리길을 걸어서 일터로 가던 길에 주막집에서 자게 됐다고 합니다. 저녁상을 놓고 있노라니 다른 손님 한 분이 또 들어오는 것입니다. 시골 주막이란 방 한 칸뿐이니 같이 잘 수밖에 없습니다. 채필근 조사는 이 사람이 아마도 자기 뒤를 밟아 온 사람인가 싶어 자리에 누워서도 돈지갑을 껴안고 밤새도록 한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뜬눈으로 지새우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들게 됐는데 조반상을 든 그 손님이 식기도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안심이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 분이 어느 지방 장로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실로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평안치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는다는 것은 모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전부를, 가진 것, 있는 것을 모두 완전히 내 맡기고 사는 자가 평안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평안하십시오 하는 인사는 "잘 믿으시오, 철저히 의탁하시오, 모두 내어 바치시오" 하는 의미의 인사말입니다.

 

 

3.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등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그들의 교회에 편지를 쓰시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길 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는 인사말로 마쳤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2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말씀 중에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이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먹을것과 입을 것, 인기를 누리고 명예를 얻음으로 잠시의 평안을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무엇일까요?

마음에 근심,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평안, 그것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 임하는 평안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칼을 피해 숨어다니면서 괴로움을 표현한 시편22, 낮에도 밤에도 신음하며 잠잠하지 않으며 많은 황소가 둘러싸며 힘센 소들이 둘러싸고 부르짖는 사자같고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같이 녹았고,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개들이 나를 에워싸고 악한 무리가 내 수족을 찌르고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을 정도라. 그러나 곧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노래합니다.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숨기지 아니하시므로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그의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 마음을 지키시고 평안함을 주시는데 우리는 그 평안을 힘써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몸이 괴로우면 병원에, 또 약을 드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호자께 연락하여 구해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평안하지 못하는 것은 육신적인 불안이 아니라 자꾸 노쇠해간다는 것입니다. 자꾸 아파지고 병이 들고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불평을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을 깨트리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마음안에 거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우리는 거할 영원한 집이 있어 그곳으로 이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도 죽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내게 주신 시간을 하나님안에서 잘 보내고

평안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힘써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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