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마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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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4.17 부활절 삼마요양원 예배

관리자  175.203.246.85 2022-04-17 13:04:50

 찬 송 :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사 회 : 한경애
묵 도 : 8문 시편14
찬 송 : 143 웬말인가 날 위하여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 송 : 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
기 도 : 한기창 원장님
성경봉독 : 히브리서 12:2
설 교 자 : 한경애 삼마요양원장 (전도사)
설교제목 : 예수를 바라보라
찬 송 :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묻습니다. 어떻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까? 이 복잡한 세상에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큰 것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지는 쪽을 선택하는 일은 가끔씩 일어납니다. 지고 있지만 지는 이유가 큰 승리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진리로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항 한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끌고 가면 끌려가시고, 때리면 맞으시고, 침 뱉으면 그 침을 맞으셨고, 채찍으로 때리면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씌우면 그대로 쓰셨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라고 하시면 그대로 행하시고,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을 받을 때는 그래도 못 박히셨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면 그대로 찔리셨고, 모욕을 주면 모욕을 받고, 십자가 아래서 비웃고 놀리면 그 비웃음과 놀림을 주는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능력을 이겨 보이는데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져 보이는 쪽으로 선택하셨을까요? 이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며,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육신이 지게 됨으로써 영혼과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가져오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패배로 보이는 승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항상 배우고 따라가고 습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끼는 대로, 끌리는 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마치 하루살고 죽을 것처럼 말이죠그러나 하루살이도 하루를 살기위해 1년 넘는 시간동안 애벌레로 구르고, 물속에서 버티고 버티며 견디다 물 밖으로 나와 짝짓기를 하고 알을 까고 죽습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1~3년을 산다고 합니다이런 하루살이만도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가끔 사람들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내일이 하나님 주시는 은총속에서 내가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오늘 손해봐도, 오늘 잘 안 되도, 오늘 수고해도 내일을 위해서 참고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 길을 가셨고, 이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결국 이 길 끝에 주님이 서 계실 것이고 우리를 맞이해 주실것입니다. 이 길이 비록 좁고 힘들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위험한 길, 손해보는 길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그래도 가야할 길인 줄 믿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 사도바울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누가 기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첫 번째 사람 아담의 범죄로 죄가 이 땅에 들어와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었다 하였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고전15:22, 45절 기록하였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은 곧 우리의 부활임을 말씀하십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전 15:13 만일 죽은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입니다.예수님께서 살아나심같이 우리도 이 육신의 옷을 벗고 잠자는 날이 이를 것이나 주 예수님 다시 이 땅에 오시는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나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줄을 믿습니다.

영국에 새로 부임한 젊은 목사님, 두 아이가 물놀이를 하다가 위험한 상황이 됨,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지기가 빨래 보트를 가져와 아이를 구하려하는데 보트가 뒤집혀 두 아이가 죽게 됨. 이 보트는 등대지기와 또 한명만 태울 수 있음.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자신의 아들과 그 친구.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서 아들아 미안하구나, 너는 예수님을 믿어 죽어도 천국 갈수있지만, 저 친구는 아직 주님을 모르니 지금 죽으면 안 되겠구나그 아들도 울며 아버지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를 보트에 태우고 돌아왔다는 설교를 하면서 목사님이 눈물을 글썽임. 어떤 불량배가 이 설교를 듣다가 다 꾸며낸 이야기라며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화를 냄. 가만히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신사가 말함. “저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라오. 그 등대지기가 나고, 이 말을 하는 저 목사님이 아들의 친구랍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비록 이땅에서 다시 못보는 이별을 겪겠지만, 많이 아쉽고 그립고 미안하고 힘들지만 다시 볼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2. 부활의 주님을 따라 가는 방법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다라는 뜻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들로부터 눈과 마음을 돌려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보아야 주님의 행적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수화로 표현 할 때 보다는 눈 앞에 동그라미 안경으로, 바라보다는 눈 양 옆에 편 손을 세워서 앞을 향해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 마음과 시선이 언제나 주님께 집중하여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가르침을 주시는지 성경에서 배우고 조금씩 그렇게 살기위해 날마다 변화되고 새로워 지는 것이 그 분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 분의 삶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씩 내 것을 좀 내려놓고 따라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현재의 상황에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존재로, 해산의 수고와 고통이 따르는 인생입니다. 살기위해 가시와 엉겅퀴와 싸워야 하고 전쟁이 있고, 다툼이 있고 경쟁이 있습니다. 세상은 더 잘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의 삶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기를 참고 현재 당하는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개의치 말라, 즉 경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무시하라, 아무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경히 여기라, 더 소중하고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 너의 것들을 참고, 경히 여길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것들을 양보하고 더 나아가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것, 예수님은 직언, 즉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행, 행함까지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고침을 받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만 살고 끝날 것처럼 절대로 손해보지 않고, 절대로지지 않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인생이 아니라 개의치 않고 경히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손에 있는 것은 내려놓을수 있어야합니다. 주님은 더 큰 것을 위해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 죽음, 멸시, 천대, 침뱉음, 모욕, 억울, 가죽채찍 등 인간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한 몸에 다 참으시고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야만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니까요.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의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오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믿음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부활절입니다. 매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설교하고 듣고 알고 있지만, 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부활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그 분의 부활하심같이 나도 부활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면 그 날에 주님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주님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나를 위해, 다시 부활하심도 나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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